To. 박회장님

지난주 한지배인님의 말씀대로, 중동감리교회는 스쾃팅이 무산되어 가장 아쉬운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저 공간을 접하고 떠올린 몇 가지 풍경들이 있었어요. 이 공간에서 스쾃팅을 진행하게 된다면, 저는 가장 먼저 천장재를 철거하여 건물의 골조가 그대로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상태에서 극적으로 더 높아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높은 층고의 공간이 지닌 매력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애초에 저의 구상은 간단했습니다. 어떤 헤리티지와 스토리텔링보다 개인의 욕망을 먼저 발산하자면, 저는 저 교회를 큰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높고 넓고, 그리고 오래된 공간에서의 독서. 흔히 '책이 있는 공간'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일상적 공간과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서가와 책상들, 즉 가구가 공간을 덧칠할 뿐, 공간만의 특성으로 '독서의 장소'를 상상하진 않습니다. (독서는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요) 높은 층고의 건축 양식(예를 들어 고딕)을 지닌 유럽에서 서고를 구축하기 위한 최적인 방식은 서가를 벽면으로 몰아 '책의 벽'을 만드는 것이었겠죠. 서가를 전반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벽이 없는 중앙은 비워두거나 열람용 책상을 두는 방식이 위의 '수잘로 도서관' 같은 공간을 탄생하게 했을 것입니다. 사실 저런 양식의 도서관은 유럽에서는 꽤 흔하지요.

우리에겐 저러한 양식도, 저러한 양식 속에 만들어진 도서관도 없기 때문에 교회를 '도서관'으로 상상하는 게 더 어렵지 않았을까요? 다만 근현대 건축에서도 도서관은 여전히 높은 층고로 디자인되는 사례가 많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대학 도서관이나 큰 도서관은 2-3개 층을 터서 높은 층고의 열람실을 만드는 경우도 빈번해지긴 했습니다. 아니면,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이나 '명동 씨네라이브러리'의 사례처럼, 애초에 도서관이 아니지만 층고가 높은 장소에서 책을 열람하거나 오브제로 활용하는 공간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여기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어떨가요? 중동교회 특유의, 오래된 공간의 어떤 장소성이 독서의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책은 어디서 가져오죠...?

아, 참고로 중동감리교회는 아시다시피 공주 원도심에서 그리 유명한 장소는 아닙니다.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근대 건축, 문화유산인 '중동성당'이나 '제일교회'를 많이 방문하시죠. 비어 있는 중동교회와는 달리 저 두 장소는 문이 열려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공주학 아카이브'(공주의 과거 생활, 문화, 헤리티지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 많습니다)라는 디지털 아카이브에 중동감리교회의 과거 사진이 남아 있어 공유합니다. 그래도 50년은 된 건물이고, 교회라는 공적인 장소인 만큼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From. 목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