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배인의 공간 스케치

공주시 원도심의 국고개를 지나다보면 콘크리트로 포장된 가파른 샛길이 보입니다. 이 길의 끝에는 우리가 올드타운스쾃팅을 진행하고자 했던, 중동감리교회가 있죠. 이곳은 올드타운스쾃팅을 기획하는 우리에게 가장 탐나는 위치였습니다. 예배당으로 쓰이는 대공간과 널찍한 주차공간, 그리고 다소 외진만큼 행사에 필연적인 각종 소음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중동감리교회는 1983년에 지어진 약 70평대의 3층 건물로 예배당의 8미터 정도의 높은 층고를 가진 건물입니다. 무엇보다 80명은 족히 수용될 것 같은 규모가 가장 탐났어요. 지역에서 접하기 힘든 대공간은 늘 매력적으로 다가오니까요. 주로 제민천보통영화제에 사용되었던 직조공장은 면적은 넓었지만 층고가 낮아 관객의 시야를 고려해 좌석 수를 가까스로 40석에 맞추었는데, 층고가 높은 이곳은 스크린을 높게 설치한다면 최소 2배 이상의 객석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또한, 비브라 음악회도 예배당 전면에 강단이 있어 연주자들의 연주를 잘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중동교회는 대공간인 예배당 말고도 전면에 사무실, 창고, 중보기도실 등 다양한 실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종 전시공간, 팝업스토어, 운영사무실로 계획하면 하나의 공간에서 올드타운스쾃팅의 모든 행사가 이루어질 수 있죠. 작은 공간들 모두 메인 예배당을 향해 창을 내고 있어 재미있는 공간 구성이 가능합니다.

2회까지의 올드타운스쾃팅은 2~3곳에서 운영되었는데, 관객이나 행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것들이 진행되면 여러모로 이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공간을 스쾃팅하지 못했어요. 교회측과 소통이 잘 되는 듯 했으나, 교회의 사정상 장소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아쉽지만 우리는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만 했습니다.

황PD의 비브라 스케치

한지배인님이 ‘교회’라는 공간을 던져주셨을 때, 종교적 장소를 '감히 스쾃해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스쾃팅은 원래의 용도와 다른 용도로 보여주는 것인데, 설교 강단 자체가 무대와 다를 게 없기에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우려도 들었죠. 하지만 비어있던 공간을 문화, 예술로 채우고 교회가 지닌 종교적 색채를 살짝 옅게 만들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게 바로 스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가장 탐나는 장소였으나 어차피 사용하지 못한 김에 그 곳을 스쾃팅했다면 어떤 무대를 만들었을지 마음껏 상상을 펼쳐보기로 해요.

교회 공간이 가졌던 예배로서의 용도는 상실되었지만, 이 곳의 상징성 혹은 의미는 여전히 사람들의 깊은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해요. 오히려 그 의미를 보존할 수 있다면 스쾃의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죠. 옛 교회에서 DJ 파티를 한다던지, 정반대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도 분명 인상 깊을 거에요. 하지만 이번에 저는 원래의 ‘신성한’ 분위기를 가져와 그것을 배가시키고 싶었어요. 무엇이 ‘신’이란 존재를 상징할까요? 무엇을 교회라는 공간과 연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교회 본래의 용도와 구분될 수 있을까요?

스케치 영상을 참고하시면 좋겠어요. 교회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고 소예배실, 대예배실, 중보기도실, 관리실 네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대예배실의 높이는 약 8미터로 지난번 스쾃팅 장소인 궁월장여관보다 훨씬 높죠. 여기서 우리는 ‘신’의 위치성을 고려할 수 있어요!

신 → 절대적 권위 → 높은 위치 → 우러러 봄

언젠가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멍때리다) 우연히 떠올랐던, 천장으로부터 길게 늘어뜨려진 전구들을 보며 전구가 'on/off'되는 모습을 소리의 표상으로 삼아 곡을 만들고 싶었던 때가 생각났어요.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신적 존재의 상징으로 흔히 쓰여요. 퍼져나가는 빛의 입자와 소리의 파동, 위치성과 이미지들을 활용해 교회 스쾃팅 공연을 만들어보아요. 높이 약 8m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은 독일 뒤셀도르프 톤할레(Düsseldorf Tonhalle, 뒤셀도르프의 음악 공연장. 독일 최고의 음향을 자랑한다)의 로비에 있는 조명들 처럼 달고 그 사이마다 교회 종소리가 나는 'Tubular Bell'을 하나씩 달아 매는 거에요.

독일 뒤셀도르프 톤할레(Düsseldorf Tonhalle)의 로비(좌)와 튜블라벨/챠임벨(Tubular Bells/Chime bell, 우). 관을 하나씩 떼어 매달아 쓸 수 있어요. (출처 : VIVID magazine, 위키피디아)

다양한 음높이와 음색을 가진 종들을 치는 타악기 연주자들의 퍼포먼스와 함께 그 아래 각기 다른 악기들이 음악을 연주해요.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 주위를 관객들이 둘러 모여 앉아요. 대예배실 뒷편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윗층엔 어떤 공간(중보기도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곳은 아마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아닐까요?

예배당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합창단이 함께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는 위에서 아래로 퍼져나가요. 이 모든게 공간을 가들 채울 때, 우리는 이 교회를 넘어 하나의 다른 차원에 와 있다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허문 평소에 보지 못한 공연, 생소한 소리.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공연의 중반, 2층의 중보예배실 창문을 열자 아이들이 이런 곡을 합창한다면 어떨까요? 우크라이나 민속 노래로 알려진 <Carol of the bells>는 크리스마스 캐럴로 듣기엔 어딘가 으스스하지만 <나 홀로 집에>,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사용되어 친숙한 곡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