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잠시 공주를 떠나 있습니다. 공주의 블루프린트북과 프론트, 그리고 수선집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을호텔의 매장 수익만으로 유지가 어려워진 요즘,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우리가 해왔던 일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었고, 지금은 서울 이태원에 자리를 마련해 일련의 사건들로 어지러워진 지역을 정비하려 합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갑자기 이루어진 이상한 역수출, 이것은 성공일까요, 실패일까요?

박회장님의 편지를 받고 2019년부터 시작되었던 MEHT(마을호텔) 프로젝트를 되짚어봤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차근차근 기록해보자면, 우리의 애초에 책방을 기획했던 때부터 실패 포인트를 적립해왔던 게 아닐까요? 😅

'한국의 <에이스 호텔>을 만들자!'며 모였던 우리가 가장 먼저 기획한 공간은 책방 블루프린트북이었습니다. 에이스 호텔의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그곳에 비치된 책이나 잡지를 펼쳐보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졌지요. '츠타야 서점'의 신화와 더불어 책과 물건을 '큐레이션'한다는 관점이 조명되던 시기였고, 전국 다양한 동네에서 책방들이 많이 생겨나던 시기였습니다. 모종린 교수님은 지역의 문화적 역량과 생명력을 동네책방의 유무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하셨다죠. (그런 동네의 책방이 망한다면 그 동네는 어떻게 되는 건지...)

문화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사업이 어렵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쉽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예견된 실패였습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도 미치지 못하는 마진으로 한 사람의 인건비라도 챙기기 위해서 몇 권의 책을 팔아야 할까요? (사람들이 커피 마시듯 책을 사는 세계관이 있긴 할까요) 많은 분들께 이러한 현실을 읍소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이런저런 도움의 손길을 주셨어요. 그럼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그 도움에 나태하게 대했던 점은 두고두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매월 매출을 점검하면서 프론트(카페)와 비교할 수도 없는 결과에 움츠러들 수밖에요. 그렇습니다. 책방은 카페에 빌붙어 사는 (고상한 척 하는) 사랑방 손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먹여 살리는 살림꾼이 따로 존재하는, 고상한 룸펜이랄까요? 그럼에도 책방은 우리가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다른 공간들이 더 빛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책과 카페, 책과 스테이, 책과 공주. 안타깝지만 지금은 책이 독립적인 존재로 우뚝서기 힘든 시대입니다. 블루프린트북은 돈 많이 들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의 '에르메스 백'입니다.

하지만 명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법! 그렇기에 돈이 안되는 책방을 3층의 사랑방에서 내쫓을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그저 먼지가 쌓이지 않게, 언제든 기분 좋게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큼은 유지시키려 합니다. 햇수로만 6년째를 맞이하는 블루프린트북은 지금도 예견된 실패를 길게길게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from. (오늘은 책방사장이라고 쓰는) 목사장

P.S. 

그런데 우리의 안주인 프론트도 요즘 힘들다고 하네요.

커피 팔아서 책을 좀 사야 하는데...